
시간이 지나간 시간 |
작성자 : 이정순 | 날짜 : 11.11.24 19:42 | 조회 : 2882 |
늦은 밤 마침내 껍질 단단한 은행을 깐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곰팡이에게 반쯤 먹힌 은행의 속살을
조금씩 뜯어낸다
몇 달 동안 선반 위에서
뻣뻣하게 말라가는 저의 주검을 알리려 했는지
내 손톱 끝이 짓무른다
인연의 끝도 모른 채
나는 선반 같은 세상의 밑을 무심히 지나다녔을 뿐이다
그런데 이 한밤
씻기고 뜯기는
저 속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어야한다는 건지
버려진 속살 조각들이
수챗구멍 속의 어두운 길을 따라
웅얼웅얼 달려간다
어디서쯤
뿌리 튼튼한 은행나무로
하얀 각질 속에 담겨
다시 태어나려고
이렇게 달려가는지
어떤 밤은
시간이 지나간 시간을 씻으면서
맑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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